안양시립도서관

Home Login English Chinese Sitemap Mypage
  • 도서관
    • 석수도서관
    • 만안도서관
    • 박달도서관
    • 평촌도서관
    • 호계도서관
    • 비산도서관
    • 어린이도서관
    • 벌말도서관
    • 관양도서관
    • 삼덕도서관
  • 자료검색
    • 통합검색
    • 정기간행물
    • 범계베스트셀러
    • 스마트 작은도서관
    • 관내학교도서검색
    • 전국공공도서관검색
    • 신착자료검색
  • 전자도서관
    • 전자책
    • 오디오북
    • 인문학강의
    • 학술논문
    • 온라인강좌학습
    • 도서요약전자도서관
    • 경기도 메모리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 독서정보서비스
    • 사서추천도서
    • 도서대출베스트
    • 독서소식지
    • 공개자료실
  • 도서관서비스
    • 도서관일정
    • 책이음
    • 문화강좌신청
    • 상호대차
    • 두루두루
    • 내생애첫도서관
    • 책바다
    • 전시회
    • 포토자료실
    • 영화상영
  • 열린마당
    • 공지사항
    • 비치희망자료목록
    • 보도자료
    • 도서관에바란다
    • 자유게시판
    • FAQ
    • 동아리
    • 설문조사
    • 추천사이트
  • 책의 도시 안양
    •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 작은도서관 공지사항

책속에 우리의 행복이

안양8경

HOME > 안양의 문화와 역사 > 안양8경

관악산 망해암 일몰

안양8경1

망해암은 동안구 비산동 산19번지에 위치한 전통사찰로서, 봉 은사말사지(奉恩寺末寺誌)에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때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가람고(伽覽考)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조선 순조 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洪大 妃)께서 중건(重建)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망해암의 중심건물인 용화전에는 석조미륵불이 모셔져 있으며 보개(寶蓋)를 쓰고 도톰한 코와 입, 길게 늘어진 귓볼에 법의(法依)는 통견(通肩)이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선이 조밀하게 표현되어 있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호(相好)와 균형감각 의복의 처리 등으로 볼 때 고려초로 추정되어져 당시의 불교 신앙과 대불조성(大佛造成)에 의한 시대적 유형을 살피는 자료로 평가 된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고 갈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소리와 어우러져 회상속에 빠져들게 하는 곳, 반짝임을 잃은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재빨리 날아가는 산새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낮과 밤의 공존을 숙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 낙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흠씬 느끼게 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다정한 사람과 손잡고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망해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삼막사 남녀근석

안양8경2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삼막사에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인 망해루와 명부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60호)이 있으며 고려시대에 세워진 삼막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과 조선 숙종때 건립된 사적비(事蹟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조선 후기의 삼막사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과 삼귀자(三龜字), 감로정(甘露井) 등 다수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어 삼막사의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男女根石)은 삼막사 칠성각앞에 있으며, 1983년 9월19일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풍화된 2개의 자연암석인데 그 모양이 남녀 성기(性器)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속전(俗傳)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을 원하고, 출산(出産)과 일가(一家)의 번영,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여, 4월 초파일과 칠월칠석날 등에는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러한 성기숭배사상은 다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으로 선사시대부터 행해져 왔는 바,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동남아 지역과 일본에도 많이 산재하고 있다.

평촌 중앙공원

안양8경3

중앙공원은 36,000평의 공간에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 함양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공원 내 수경시설인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바닥분수)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하고있다.

더불어 주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그늘, 파고라, 산책로는 녹음 및 그늘을 제공하며 야간에 수경시설의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할 것이다. 또한, 공원과 연계하여 시민들의 동적인 생활체육을 즐 길 수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 X-게임장, 차 없는 거리가 있다.

차 없는 거리는 토요일 오후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알뜰벼룩시장의 문화공간과, 가족과 연인끼리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도로 및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인라인매니아의 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우레탄으로 조성된 1,000평의 전용 인라인스케이트장과 X-게임장은 가족 단위 및 청소년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며, 인근시의 주민들도 즐겨 찾고 있다.

나무, 꽃, 물을 동시에 감상하고 시민축제, 청소년들을 위한 젊음의 축제, 주부들을 위한 주부가요제 등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사시사철 이용하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중앙공원은 우리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안양의 명소이며 영원한 우리의 쉼터로 남을 것이다.

삼막천 만안교

안양8경4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生父)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화산(華山)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 노변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의 형(兄) 약로(若魯)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 하여 시흥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 것은 7번째 능행부터이다. 이 다리는 처음에는 나무로 다리를 놓아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경기관찰사 서용보에 의해 돌로 이를 대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長臺石)을 깔아 축조 하였다. 축조양식이 정교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위치는 남쪽 200m 지점의 안양천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에 이곳 만안구 석수2동의 삼막천으로 이전하였으며, 다리 앞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쓴 만안교비가 있어 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만안교 다리밟기가 펼쳐진다.

수리산 성지

안양8경5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던 중 1839년 천 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해 7월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었다.

이들은 배교(背敎)하라는 고문과 회유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다.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수리산 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 수리산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며, 전국 각지에서 연중 30,000여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양 예술공원

안양8경6

안양 예술공원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우어 주던 곳이다.

그러나 열악한 시설과 낙후된 환경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유원지라는 명맥만 유지해 왔다.

이러한 안양유원지를 국제적인 명소로 만들어 옛 명성을 되찾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여 택지조성, 도로, 상하수도, 하천정비 등 기반시설정비와 노후불량 건물을 철거하고 주택을 새로 지어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한편, 유원지 상류에 소형 댐을 만들어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또한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을 비롯해 광장, 산책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하였으며, 공원조성사업과 연계하여 국제적 수준의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추진 전망대, 1평정보센터, 하늘다락방, 물고기눈물분수 등 유원지 곳곳에 국내외 유명작가의 예술작품 52점을 설치하고 안양유원지 명칭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안양예술공원 주변에는 울창한 숲 사이로 잘 발달된 여러 등산로가 있어 수도권 시민들의 등산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안양사, 염불암 등 전통사찰과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당간지주를 비롯해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중초사지 3층 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등이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안양8경7

병목안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워진 안양9동의 마을 명칭이다.

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며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목안을 거슬러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산이 수리산으로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코스를 이루고 있다. 수리산중에는 산세가 관머리 같다하여 붙여진 관모봉이 있다. 관모봉에서 바라보는 안양시가지는 넓은 벌판을 보는것 같이 크고 작은 빌딩들과 도로가 어우러져 안양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리산에는 시에서 잘 꾸며 놓은 산림욕장이 있다. 시에서 설치한 제 1,2,3 전망대는 장소별로 각기 조망이 달라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특히, 제1,2 전망대의 목재전망데크,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발지압장, 그리고 연장 25m의 출렁다리와 임간교실 등이 2003년 6월 시에서 설치한 이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백영약수터 등 10 여개의 약수터는 시민에게 맑은 약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병목안을 상징해 주면서도 수리산을 상징하는 징표이기도 한 병모양의 석탑! 양쪽에 조화롭게 병모양으로 쌓아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 없는 돌무더기 들을 이용해서 자연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산림욕장의 명물이며 이정표이기도 하다. 석탑이 상징하듯 백영약수터 오르막길에는 돌무더기 곳곳마다 정성을 쌓아 올린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 있다. 시민 휴식처로서의 수리산은 계절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함께 산림욕의 최적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중 가장 상징깊게 화면에 남는 곳은 바로 혼신을 다해 정성껏 쌓아올린 석탑이 될 것이다.

안양 1번가

안양8경8

조선조 제22대 정조 임금께서 1795년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에 사도세자인 부왕의 묘에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으신 후 화산능행의 노정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안양~수원의 노정으로 바꾸시면서 유래정 뒤 (안양1동 674-67)에 안양 행궁을 짓고 휴식을 취하신 곳이 되자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안양역이 생기자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지로 발달된 안양1동에는 1917년 7월에 호계2동에 있던 서이면사무소가 지금의 안양1동 사무소 옆으로 이전하여 면사무소 업무를 보게 되었다.
그후 1924년에는 안양금융조합과 안양연초조합, 우체국들이 속속 이곳에 세워졌고, 광복 후에도 시흥군청사와 안양경찰서, 안양읍사무소 등 공공기관이 들어서자 관가의 거리로 되었다.

재래상권인 안양시장이 1926년 이곳에 개설되어 상권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1980년대에는 먹거리, 옷가게, 유흥주점이 주류를 이루었던 곳이 1990년대 들어 젊은 취향의 캐쥬얼스타일의 의류와 내셔널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하였다. 2000년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가 잘 융화된 거리로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상권을 형성하여 안양최대의 번화가로 부상하였다. 안양의 금융, 교통, 상권을 태동시킨 안양1번가는 지역 발전을 일으킨 상징적 의미에서 '안양 1번가'로 부르게 되었고 시에서는 1998년 상가 주변길을 '안양1번가 길'로 명칭을 부여 했다.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 도시, 패션의 거리 안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거리 대축제가 열려 시민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자유와 멋과 낭만을 느끼고 체험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 바로가기

QUICK MENU

상단으로 이동